성지소개

선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선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1760~1801)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는 1760년 경기도 광주의 마재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39년에 순교한 유조이 체칠리아 성녀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이고, 1801년에 순교한 정철상 가롤로와 1839년에 순교한 정하상 바오로 성인, 정정혜 엘리사벳 성녀는 그의 아들과 딸입니다.

광암 이벽과의 교류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세례를 받고 교리 연구와 가족을 가르치는 데 전심하였다. 그러다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인근 지역의 신자들과 자주 교류하였으며, 몇몇 교우들을 자신의 집에 받아들여 교리를 가르치기도 하였고, 직접 교회 일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의 교리 지식은 교우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1794년 말 중국인 주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정 아우구스티노는 자주 한양으로 올라가 성사를 받았고, 신부와 교우들을 도와 교회 일을 처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오랫동안의 교리 연구를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 2권을 완성하였는데, 이 책은 주 신부의 승인를 얻어 교우들에게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또한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를 조직하고 그 초대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정 아우구스티노는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체포자 명단에 그 이름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박해 초기에 그의 책 상자가 관청에 압수되자, 조정에서는 곧바로 그를 체포해 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음력 2월 11일에 체포되어 상급 재판소인 의금부로 압송되었습니다.

체포 이튿날부터 정 아우구스티노는 엄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순교할 원의를 갖고 있던 그에게는 어떠한 유혹과 형벌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는 교회나 교우들에게 해가 되는 말은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오로지 천주교 교리가 올바르다는 것만을 설명하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결국 정 아우구스티노는 체포된 지 15일 만에 형장으로 정해진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였습니다.